갑자기 바뀐 ERP 시스템과 당혹스러움
지난달부터 우리 회사 내부 시스템이 싹 바뀌었다. 기존에 쓰던 방식이 낡았다는 이유로 ERP를 새로 도입한 건데, 솔직히 처음에는 다들 불만이 많았다. 예전에는 그냥 엑셀로 대충 정리해서 보내면 그만이었던 발주서가 이제는 시스템에 직접 로그인해서 하나하나 입력해야 하는 구조로 변했으니까. 특히 나 같은 연차의 직원들은 기존에 몸에 익은 방식이 있어서, 새로 바뀐 화면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늘었다. 큐알스캐너로 재고를 찍어야 하는데, 이게 또 감도가 예전 바코드리더기만 못해서 한두 번씩 삑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정말 속이 탄다. 옆자리 대리는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며 투덜거리는데, 나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지 뭐.
웹하드 파일 하나 옮기는 것도 일이 된 상황
예전에는 필요할 때마다 웹하드 들어가서 자료 다운받고 공유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보안 강화한다고 클라우드 환경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파일 하나 올리려면 승인 절차를 두 번이나 거쳐야 한다. 급하게 밴더사에서 보낸 사양서를 확인해야 하는데, 메신저로 바로 받으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가 보안 위반이라고 한소리 들었다. 그 뒤로는 그냥 규정대로 처리하고는 있는데, 가끔은 이게 정말 일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정보관리사분들이 강조하는 보안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당장 오늘 처리해야 할 물량은 쌓여 있는데 서류 하나 띄우는 데만 십 분이 넘게 걸리니 답답할 노릇이다. 예전에 쓰던 메신저는 그냥 대화창이었는데, 지금은 사내 메신저가 ERP랑 다 연동되어서 대화 내용까지 다 기록된다고 생각하니까 말 한마디 하는 것도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데이터 표준화라는 게 참 말처럼 쉽지 않다
회의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데이터의 표준화’였다. 모든 공정 데이터가 ERP에 쌓이면 AI가 알아서 재고도 예측하고 품질 검사도 해줄 거라고 했다. 근데 현장은 정말 다르다. 재봉 공정에서 나오는 불량률을 하나하나 입력하려니, 작업자분들이 일일이 폰으로 입력하는 걸 번거로워하신다. 사실 현장에서는 지금 당장 기계 돌아가는 게 먼저지, 데이터 입력이 먼저가 아니지 않나. 가끔 작업자분들이 입력 안 하고 지나가면 사무실에서 내가 전화를 돌려서 ‘이거 입력해주셔야 해요’라고 부탁해야 한다. 한 달 비용으로 대략 수십만 원 단위의 라이선스 비용이 나가는 것 같은데, 이 돈 들여서 하는 게 고작 현장 분들 귀찮게 하는 일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일단 돌아가기는 하니까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다들 적응하는 것 같긴 하다. 나도 이제는 습관적으로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시스템부터 켜고 로그인한다. 전에는 안 보이던 매출 현황이나 원가 흐름이 그래프로 딱 찍혀서 나오는 건 신기하긴 하더라. 물론 그 수치가 100% 정확한 건지, 아니면 입력 오류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밴더사 관리도 훨씬 체계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업체별로 메일함 뒤져가며 계약서 찾았는데, 지금은 거래처 코드만 입력하면 그동안 주고받은 모든 이력이 한눈에 뜬다. 다만, 가끔 시스템이 서버 점검한다고 오후 세 시에 멈춰버리면 정말 난감하다. 그럴 때면 그냥 다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커피 마시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정말 이 시스템이 우리랑 맞는 걸까
사실 고민은 아직 남았다. 이게 우리 회사 규모에 비해서 너무 거창한 건 아닌지, 아니면 더 효율적인 방식이 있는 건 아닌지 잘 모르겠다. 다른 업체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더 가볍게 쓴다던데 우리는 너무 무거운 툴을 도입한 것 같기도 하고.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우리 회사가 매달 부담하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 그만큼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 나중에 혹시라도 회사가 더 커지면 그때 가서나 이 시스템이 빛을 보려나. 지금은 그냥 시키는 대로 입력하고, 오류 나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게 내 하루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중에 사수가 되면 조금 더 잘 알게 될지, 아니면 그냥 계속 이렇게 시스템 노예로 남을지 가끔 궁금해진다. 뭐, 그래도 일단 돌아가긴 하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