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계좌
재작년인가, 적당히 굴릴 곳을 찾다가 채권형 펀드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주식은 너무 매일매일 오르내리는 게 피곤해서, 조금은 느긋하게 갈 수 있는 걸 찾고 싶었다. 주변에서 하도 안전하다, 꼬박꼬박 나온다 하길래 고민 끝에 증권사 어플을 켰다. 그때는 뮤추얼펀드나 TDF 같은 용어도 생소했는데, 일단 이것저것 눌러보며 고른 게 AB 글로벌 고수익 채권형 펀드였다. 처음에는 1천만 원 정도를 넣어두고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돈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막상 투자를 시작하고 나니 예금처럼 무덤덤하게 둘 수가 없더라. 오늘 증권 시세가 어떻다, 금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뉴스가 들릴 때마다 자꾸 계좌를 열어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식 열풍에 끼지 못하는 소외감
얼마 전부터 주변 친구들이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네, 요즘 무슨 종목이 뜨네 하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채권형 펀드에 묶여 있으니 수익률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다. 코스피가 랠리를 달릴 때 채권형 펀드만 들고 있으려니 괜히 나만 시대에 뒤처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실제로도 최근 증시가 급등하면서 채권만으로는 수익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채권혼합형으로 갈아타야 하나 싶어서 매도 버튼을 누를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어차피 100% 만족하는 선택지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은 몇 배씩 수익을 낼 때 쥐꼬리만한 이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양도세 계산하다 포기할 뻔한 순간
미국 주식 양도세 감면 막차 타려고 계산기 두드리던 날이 떠오른다. 세금 문제 때문에 28일 오전 8~9시까지는 팔아야 한다고 해서 알람까지 맞춰두고 준비했는데, 막상 따져보니 국내 채권형 펀드는 또 세금 체계가 다르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누구는 해외 주식으로 2천만 원 벌어서 공제받고 어쩌고 하는데, 나는 펀드 수익 몇십만 원에 종합과세 대상이 되나 안 되나를 검색하고 앉아 있었다. 금융소득종합과세라는 단어만 봐도 머리가 아픈데, 연금저축펀드나 ISA 계좌까지 챙기려니 이건 뭐 재테크가 아니라 공부를 하나 더 하는 기분이다. 연간 납입 한도 2천만 원 맞추는 것도 매달 월급 들어오자마자 이체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파킹형 ETF와 고민하던 날들
사실 채권형 펀드 말고 파킹형 ETF 쪽으로 다 옮길까 생각도 했었다. 요즘은 하루만 넣어둬도 이자가 붙는 상품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또 막상 펀드를 해지하려고 보니 그동안 쌓인 수익률이 아까워서 못 하겠더라. 특히 노후 대비용으로 월 현금흐름 만들겠다고 즉시연금보험이나 ELS까지 기웃거렸던 시기가 있었다. 월 8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 고정 수입을 만들어보겠다고 설계를 짜봤지만, 현실은 펀드 배당 들어오는 날 치킨이나 한 마리 시켜 먹는 게 전부다. 결국 크게 불리지는 못하고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이랄까. 이게 정말 나중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그냥 예금에 박아두는 게 나았을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끝맺음 없는 투자의 굴레
글로벌 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한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걸 하는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냥 남들 다 하는 흔한 상품 중 하나를 잡고 있는 것 같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질 때는 그나마 마음이 놓이지만, 증시가 뜨거울 때는 괜히 발을 담그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펀드 마켓에서 매수 버튼 하나 누르는 건 3분도 안 걸렸는데, 그 뒤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렇게 머리를 굴리며 고민할 줄은 몰랐다. 다음에는 그냥 속 편하게 적금이나 들까 싶다가도, 막상 이율을 보면 다시 펀드 쪽을 기웃거리게 된다. 이 굴레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