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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설계, 교과서대로 하면 망하는 이유

사회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주변에서 ‘금융설계’를 제대로 받아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거나 대출을 갚아나가는 30대 중반쯤 되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죠. 그런데 제가 실제로 자산을 굴려보고 세무 상담도 받아보면서 느낀 건, 책이나 뉴스에서 말하는 완벽한 설계는 실전에서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금융설계라는 게 사실은 매달 10만 원, 20만 원 아끼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불확실성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싸움이더군요.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가 ‘목적지’만 정해두고 ‘과정’의 변수를 무시하는 겁니다. 몇 년 전 저는 지인의 권유로 장기 적립식 펀드와 보험을 섞은 상품에 가입했습니다. 10년 뒤 목돈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죠. 하지만 실제로는 3년도 못 버텼습니다. 갑작스러운 전세금 인상과 이직 준비라는 현실적인 변수가 닥치니, 매달 나가는 고정비가 숨통을 조여오더군요. 결국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 해지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건, 내 월급의 흐름과 가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금융 전문가들은 ‘시간은 돈’이라며 일찍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당장 내일 연봉이 오를지, 부서가 바뀔지, 혹은 예상치 못한 병원비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30년 장기 투자’ 같은 거창한 설계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금융설계는 100만 원을 벌어서 50만 원을 어떻게 쪼갤지가 아니라, 내가 최악의 상황에서 얼마를 현금으로 쥐고 있어야 잠을 편히 잘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미성년 자녀 증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0년 합산 2천만 원 공제 한도를 채우는 게 정석이라고 다들 말하죠. 하지만 제 경험상, 무리하게 증여를 서두르다가 정작 집안의 긴급 자금이 부족해져서 낭패를 보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이럴 때는 증여를 하지 않고 현금을 유동성 있게 보유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습니다. 100%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0원이 최선의 전략이기도 하거든요.

금융설계를 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현실적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 1시간 상담비가 20~50만 원 사이라면 그 비용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상품 위주의 제안은 대부분 판매 수수료가 포함되어 있어 수익률을 깎아먹기 쉽습니다. 셋째, 5년 뒤의 내 상황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설계를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는 여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금융설계는 누구에게 필요할까요? 자신의 지출 흐름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거나, 세금 관련 지식이 전무해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매달 얼마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엑셀로 정리할 수 있고, 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방어기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남의 설계에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내일 당장 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지난 3개월간의 내 카드 내역을 출력해서 불필요한 고정 지출 하나를 찾아내 삭제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금융의 시작일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이런 방식이 모든 자산 규모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자산이 수십억 단위로 넘어가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며, 이때는 전문가의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저 역시 여전히 제가 세운 계획대로 미래가 흘러갈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금융의 본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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