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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원 정도 모이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알바비와 월급을 조금씩 떼어 천만 원을 만들었을 때의 기분

정말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직접 굴릴 수 있는 목돈의 최저 기준선이 보통 천만 원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다. 주말마다 편의점 단기알바를 하고 매달 받는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놓은 돈이 드디어 통장에 찍혔을 때 처음엔 꽤 뿌듯했다. 그런데 막상 이 숫자를 보고 있으니 이걸 어디에 둬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냥 일반 입출금 통장에 놔두기에는 물가상승률이니 뭐니 해서 매달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고, 그렇다고 덜컥 주식에 다 밀어 넣기에는 겁이 났다. 재테크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어지는 묘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위에 물어봐도 다들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엔 주식이나 코인 얘기뿐이라 나 같은 초보자가 발을 들이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게만 느껴졌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모아둔 돈을 어디로 보낼지 결정하는 게 훨씬 피곤한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금융 앱에서 추천하는 정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혼자서 해결해보려고 폰에 깔려 있는 은행이랑 증권사 앱을 하나씩 다 켜봤다. 평소에는 송금할 때만 쓰던 KB증권 앱을 켜니 자산관리 탭에 ‘오늘의 콕’이라는 콘텐츠가 보였다. 주식이나 부동산, 세무 관련 정보들을 매일 짧게 보여주는 서비스였는데,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멍하니 읽기에는 괜찮았다. 대우건설 주가 흐름이라든가 SK이터닉스 전망 같은 분석 글도 종종 올라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글을 읽어도 당장 내가 천만 원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주식 시장이 매일 변한다는 건 알겠는데 내가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정작 내 마음에 쏙 와닿는 선택지는 보이지 않아서 앱 화면을 켰다 껐다 하는 일만 며칠째 반복했다. 괜히 머리만 아프고 내가 모르는 용어들만 잔뜩 눈에 들어오니 오히려 재테크에 대한 거부감만 살짝 생기는 것 같았다.

하루 5천원씩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펀드 설정을 해두고

그러다 스마트폰 모바일 뱅킹 앱에서 우연히 발견한 게 우리은행의 ‘펀드 모으기’ 서비스였다. 최소 가입 금액이 5,0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큰돈을 한 번에 굴릴 배짱은 없으니, 하루에 커피 한 잔 안 마신 셈 치고 매일 조금씩 투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9시에 지정된 펀드로 5,000원씩 자동 이체가 되도록 설정을 해두었다. 큰맘 먹고 하는 투자가 아니라 그냥 소소한 용돈 굴리기 같은 느낌이라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보니 이게 진짜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루에 오천 원씩 모여봤자 한 달에 15만 원 남짓인데, 이 속도로는 천만 원을 언제 굴려보나 하는 현타가 조용히 찾아왔다.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일단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미국채권이랑 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흘려보낸 시간들

매일 오천 원씩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남은 돈을 그냥 놔두기는 아까워서 다른 안전자산도 비교해보았다. 요즘 유행한다는 미국채권 ETF와 금 ETF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금리가 내려갈 때는 미국채권 ETF가 무난하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달러 가치나 전쟁 리스크 때문에 금 ETF가 장기적으로 낫다고 했다. 예전에 아는 선배가 추천해 줬던 비과세 저축보험도 잠깐 생각났지만, 그건 한 번 묶이면 최소 몇 년 동안 돈을 못 꺼내 쓴다는 단점이 있어서 금방 마음을 접었다. 결국 주식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매수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대략 3개월 동안 시간만 흘려보냈다. 매번 차트만 쳐다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내 모습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로 내 천만 원은 여전히 파킹통장에 묶여서 2%대 이자나 겨우 받아먹고 있었다.

매일 알림창을 들여다보는 피로감만 늘어난 기분이다

지금도 매일 아침 9시만 되면 스마트폰 상단바에 5,000원이 이체되었다는 알림 팝업이 뜬다. 지난 석 달 동안 모인 금액을 다 합쳐봐야 겨우 몇십만 원 수준이고, 수익률은 마이너스와 플러스를 찔끔거리는 수준이라 딱히 돈을 벌었다는 실감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매일 아침 알림이 올 때마다 오늘의 주식시장 상황이 어떤지 한 번씩 들여다보게 되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푼돈을 넣어놓고는 하루 종일 코스피 지수를 확인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괜히 신경 쓸 일만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다. 남들은 천만 원으로 몇 백만 원을 벌었네 어쩌네 하는데 나는 여전히 갈 길을 잃은 채로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이 푼돈 모으기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다 해지하고 마음 편하게 예금에 묶어버리는 게 나을지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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