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의욕만 앞섰던 엑셀 가계부
월급날이 되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이번 달은 진짜 아껴 써야지.’ 며칠 전부터 홈택스 환급금 조회도 해보고, 재테크 관련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보니 나도 뭔가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엑셀 파일을 켰다. 수입과 지출 항목을 세세하게 나누고, 함수까지 넣어서 매달 순자산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그래프로 보고 싶었다. 3년 전쯤 시빅코인이 한창 오르내릴 때 주식 창만 들여다보던 버릇을 좀 고쳐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며칠은 재미있어서 퇴근하고 카페에 앉아 그날 쓴 커피값 4,500원부터 점심값까지 다 기록했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니 이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나 싶더라.
귀찮음이 밀려오는 순간들
문제는 매일 기록하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데 있었다. 체크카드 내역이랑 신용카드 대금을 엑셀에 옮겨 적는 과정이 정말 지루했다. 가끔은 내가 쓴 게 맞나 싶어서 카드 앱을 열어보면 기억에도 없는 소액 결제들이 튀어나온다. 농협 간병비보험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날엔 자동으로 금액이 수정되게 해놨는데, 어느 날 보니까 보험료가 몇천 원 올라서 수식이 꼬여 있었다. 그거 하나 고치겠다고 30분 동안 엑셀 셀을 클릭하고 있는데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돈을 벌려고 이걸 하는 건지, 엑셀 칸을 채우려고 노동을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재택 알바를 한 건 더 뛰는 게 수익적으로는 나았을지도 모른다.
미술 작품 구매를 고민하다 멈춘 사연
가계부를 쓰다 보니 내가 진짜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식비보다 자잘한 구독 서비스나 충동구매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조급해졌다. ‘이 돈 모아서 뭘 하나, 요즘 금리가 높은 은행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데.’ 금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기 벅차 보였다. 주변에서는 미술 작품 구매가 요즘 재테크라고 해서 소액으로 가능한 플랫폼들을 구경해봤는데, 이게 진짜 자산이 될지 아니면 그냥 예쁜 인테리어용이 될지 확신이 안 섰다. 결국 돈을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예전 블로그 글귀만 되새기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돈을 안 쓰면 최소한 잃지는 않으니까.
주식과 금,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마음
BOIL 주가나 금 재테크 같은 것들도 기웃거려 봤다. 예전엔 주식 블로그를 보면서 나도 단타로 좀 벌어볼까 싶었는데, 시장 변동성이 워낙 커서 정신이 나갈 것 같더라. 실물 금을 조금씩 모아볼까 싶어서 가격을 매일 체크해보기도 했는데, 사실 내 예산으로는 유의미한 수량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주말에는 운세 앱에서 ‘지출보다 수입이 늘어나는 날’이라는 알림을 보고 기분 좋게 로또를 사본 적도 있다. 그런데 재테크 공부를 하러 세미나에 가보라는 조언은 도저히 실천하기가 어렵다. 주말에 쉬기도 바쁜데, 굳이 돈 써가면서 강의를 듣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결국 엑셀 파일은 바탕화면에 방치된 채 한 달째 열어보지 않고 있다. 다시 수기 가계부나 간단한 앱으로 돌아갈까 싶지만, 그마저도 영 귀찮다. 그냥 월급 들어오면 필요한 공과금 내고, 적금 자동이체 걸어두고 남은 걸로 적당히 사는 게 제일 속 편한 것 같다. 머니무브니 뭐니 뉴스에서 떠들어도 당장 내 통장에 꽂히는 금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까. 가끔 홈택스에서 세금 환급이나 확인하면서 ‘오, 이게 웬 떡이지’ 하는 게 내 재테크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아니면 나만 너무 안일하게 구는 건지 가끔 불안할 때가 있다. 물론 그 불안함조차 귀찮아서 다시 스마트폰으로 숏폼 영상을 보고 있긴 하지만.
